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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 악귀와 인간의 경계 위에서 피어난 고통과 연대의 서사

by copain25 2025. 7. 6.

드라마 악귀

어둠 속에서 깨어난 악귀, 오늘도 저주를 품는 구산영

구산영(김태리)은 낮에는 공시생, 밤에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팍팍한 삶을 감내하는 평범한 청춘이다. 아버지 구강모 교수(진선규)의 유품인 옥비녀를 얻은 순간, 산영의 세계는 송두리째 흔들렸다. 옥비녀에 깃든 악귀가 그녀의 몸을 빌려 악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그녀의 주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죽음과 저주의 징후가 하나둘씩 드러났다. 이 모든 현상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죽음과 상실, 분노가 뒤섞인 인간의 욕망이 악귀를 불러내고, 그 악귀는 또 구산영의 어둠 속에 스며든다. 산영은 자신이 악귀에게 선택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힌트를 좇지만, 그 과정은 점점 더 깊고 복잡한 심연으로 이어진다. 김태리는 공포에 얼어붙은 얼굴을 지나, 악귀로 변신한 순간의 차가운 표정까지 한 컷 안에 녹여낸다. 두 얼굴이 공존하는 산영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감정적 충격을 전한다. 그녀의 공포와 분노가 시청자의 가슴깊이 전해지며, 이 드라마의 서사가 단순한 호러를 넘어 인간 내부의 공존하는 어둠을 건드린다.

민속과 공포, 공조하는 두 사람의 고요한 저항

염해상(오정세)은 민속학 교수로, 어렸을 때부터 악귀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악귀를 평생 쫓으며, 이 세계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갖추었다. 구산영에게 붙은 악귀를 알아본 그는 그녀에게 경고하며, 악귀 쫓는 공조를 시작한다. 염해상은 악귀를 두려워하는 산영에게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인간과 악귀 사이에서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동료로 다가간다. 종종 무표정 속에 담긴 고뇌와 무언의 결의는, 그의 캐릭터가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홍새(홍경)는 경찰이자 권력 실세의 아들로, 신념과 야망 사이에서 선을 넘는 행동을 반복한다. 악귀가 벌이는 살인의 실체를 좇으며 그는 공권력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의 등장으로 드라마는 오컬트뿐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서늘한 메시지를 던진다. 나병희(김해숙)는 염해상의 냉혹한 할머니이지만, 민속을 통한 양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손자와 산영이라는 기이한 연대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고령이 뿜어내는 비밀의 서사는 민속적 공포의 토대 역할을 한다. 진선규는 특별 출연이었지만, 구산영의 아버지 구강모 교수로서 내내 작품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의 죽음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비밀의 시작이자, 산영과 해상을 악귀 추적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다. 악귀 자체가 공포의 주체이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서스펜스는 ‘인간’에 있다. 악귀를 추격하는 사건들 안에서, 인간의 욕망·후회·비밀이 교차한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무게감을 전달한다. 사건 하나하나가 사람의 내면을 흔들며, 연대는 외로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다가온다.

공포를 넘어선 인간의 재생, 악귀를 딛고 선 용기

‘악귀’는 민속신앙과 오컬트를 무기로 삼아 공포의 기원을 파헤치지만, 결국에는 ‘인간을 향한 신뢰와 연대’를 노래한다. 구산영은 악귀에 붙잡히지만, 악귀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잃지 않는 걸음으로 시청자의 마음에 안착한다. 김태리는 공포와 결기를 오가며 산영을 완전한 주체로 만들어냈다. 염해상의 공허한 시선과 묵향한 말투는 민속학자의 지혜만이 아니라, 공포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어른의 책임’을 느끼게 한다. 오정세는 산영을 이끄는 동료이자, 자신의 트라우마를 함께 껴안는 인물로 섬세하게 성장한다. 홍경은 권력의 미묘한 얼굴을 통해 인간의 공포를 확장시키고, 김해숙은 세대를 넘는 인식을 통해 민속의 텍스트를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진선규는 산영의 어둠을 시작한 전환점으로서 존재감을 남긴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악귀가 사라지고, 어둠 속에 남겨진 것은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전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악귀 이후의 침묵 속에서도 그들의 호흡은 계속 이어졌다. ‘악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시청자가 마지막 장면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공포의 순간마다 피어난 연대와 용기가 그 끝에서 우리에게 진짜 희망을 던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