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2024 상반기 화제작 '세작, 매혹된 자들'은 조정의 세작으로 살아가는 여주인공과 조선의 젊은 왕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기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궁중 서사극이다. 조정석과 신세경, 이신영 등 탄탄한 캐스팅이 만든 흡입력 있는 전개와 반전의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첩보와 궁중 로맨스의 교차점, '세작, 매혹된 자들'
2024년 상반기 방영된 tvN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은 ‘사극 로맨스’라는 장르에 스릴러와 정치 드라마의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전통 궁중극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감성과 리듬을 가미하여, 전 세대를 아우르는 시청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 작품은 ‘세작’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조선 시대 정보전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인물과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임금 간의 금기된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이인(조정석 분)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조선의 임금 자리에 오르게 된 바둑 천재 출신의 왕이다. 세상에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그의 곁으로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하는 강희수(신세경 분)는 바둑 실력으로 왕의 관심을 얻으며 세작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녀는 강몽우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항순 영의정의 딸이자 세작 조직의 일원으로 이중적 삶을 살아간다. 이인과 강희수의 관계는 단순한 궁중 로맨스를 넘어선다. 정보전, 권력 투쟁, 그리고 가족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들이 얽히며 두 사람의 감정은 깊어지지만, 동시에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작품은 사랑이 정치적 도구가 되는 순간의 파괴력과, 진심이 드러날 때 벌어지는 복잡한 인간 군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의 독보적인 강점은 정적인 궁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극적인 서사 전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바둑처럼,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이 예측 불가한 전개 속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세작, 매혹된 자들'은 단지 로맨스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권력, 충성심과 배신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사극이다.
실제 인물 관계와 연기력으로 완성된 사극의 진수
‘세작, 매혹된 자들’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실제 정치·가문 관계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세 인물이 있다. 왕 이인(조정석)은 내면의 상처를 감춘 채 왕좌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정치 전쟁을 펼친다. 그의 곁에 바둑 실력으로 접근한 강희수(신세경)는 왕에게 진심을 품게 되면서, 세작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또 다른 축인 김명하(이신영)는 외척 김종배의 아들로,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정치 야망을 지닌 인물이다. 이 외에도 이선(최대훈), 박종환(이규회), 유현보(양경원), 동상궁(박예영), 왕대비 박씨(장영남), 그리고 강희수의 아버지인 강항순 영의정(손현주) 등 실존감 있는 캐릭터들이 주변을 단단히 둘러싼다. 이들은 각자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왕과 세작의 관계를 이용하거나 저지하려 한다. 이런 구성은 드라마를 단순히 한 쌍의 연애 서사로 보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특히 박예영이 연기한 동상궁은 전 왕과 현 왕 모두를 섬기며 '패륜'이라 불릴 정도로 궁중 내 권력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다. 그녀의 미묘한 표정과 행동은 극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강항순 역의 손현주는 자식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권력 구조 속에 침잠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리를 그려내며, 전통적인 충신의 틀을 넘는 입체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 OST와 영상미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전통 현악기와 현대적 음향 효과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배경음악은 장면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조명과 미장센은 조선 궁중의 고요함과 숨겨진 역동성을 세련되게 표현해냈다. 바둑을 통한 심리 묘사는 이 작품만의 독창성을 보여주며, 왕과 세작이 한 수를 둘 때마다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정체성과 운명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감정의 본질,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인간성, 그리고 한 나라의 운명을 건 선택의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인과 강희수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지만, 각자의 위치와 사명, 그리고 조정 내 복잡한 세력 다툼으로 인해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선택은 더욱 치열해진다. 강희수는 세작으로서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왕의 신뢰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이인은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나라의 안위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애틋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시대와 운명을 초월한 인간적 숭고함의 표현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이인과 강희수가 다시 만나는 장면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은유적인 장치로 연출되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했다. 일부는 환생의 메시지로, 일부는 마음속 기억의 재현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어떤 해석도 시청자의 감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세작, 매혹된 자들’은 전통 사극이 어떻게 현대적 서사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이다. 사랑과 정치, 정체성과 선택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K-드라마 사극의 진화를 이끌었다. 단순한 흥행을 넘어, 이 드라마는 오래도록 회자될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